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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부상낭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898
한자 烈婦尙娘傳
영어의미역 Biography of Virtuous Woman Sangna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傳)|전기|인물전|열녀전
작가 김민택(金民澤, 1678~1722)
창작연도/발표연도 조선 후기

[정의]

조선 후기 김민택이 구미 지역의 열녀 상낭(尙娘)의 절개를 칭송하며 쓴 전기.

[개설]

김민택(金民澤, 1678~17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헌(竹軒)이다.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 이진검·이진유 등이 김민택의 형 호조참판 김운택을 논핵하였다. 이때 형 김운택의 용서를 청하는 상소를 하였고, 뒤에 실록랑·지제교를 지냈다. 저서에 『죽헌집(竹軒集)』이 있다.

평민 여성 상낭이 열을 지켜 죽은 일은 조선 후기 선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많은 문사들이 상낭의 이야기를 시와 전(傳)으로 기록하였는데 「열부상낭전」도 그중 하나이다. 경상남도 구미시 일대에 전해 오는 이옥「상낭전」이 내용을 같이한다.

[구성]

「열부상낭전」은 열녀 상낭(尙娘)의 일대기와 김민택(金民澤)의 논평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선산 양갓집 딸인 상낭(尙娘)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곧고 깨끗하여 다른 아이들과 함부로 놀지 않고, 계모가 상낭을 심하게 박대했지만 지성으로 섬겼다. 상낭은 장성하여 시집을 갔는데, 남편의 성품이 사납고 포악하여 상낭을 원수 대하듯 하였다. 시부모도 아들을 만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원수 대하듯 상낭을 미워하여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상낭이 친정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아우를 시켜 상낭을 개가시키려 하였다. 이에 상낭은 준엄한 말로 개가 권유를 물리치고 시부모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집에서도 박대받아 상낭은 갈 곳이 없게 되었다. 한 번 결혼하여 남편이 있는 처지로 다시 결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상낭은 강물에 빠져 죽고자 길재의 지주비 아래로 갔다. 투신 직전에 그곳에서 나무하던 소녀를 만난 상낭은 아이에게 자신의 나이와 양가의 부모 등에 대해 들려주고 치마와 신발을 아이에게 넘기며 자신의 죽음을 전해 줄 것을 요청하고는 물에 빠져 죽었다.

여기까지가 상낭의 일대기이며, 김민택의 논(論)이 뒤를 잇는다. 김민택은 중국의 경우 주로 사부(師傅)와 보모(保姆) 등에 의해 일상의 사소한 예절까지 가르침받은 귀인이나 대단한 가문의 여인들이 의리와 절조를 지키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골 여인들 중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들이 많을 뿐 귀인이나 대단한 가문의 여인 중에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가 드물다 하였다. 이어 김민택은 여인들이 의리와 절개를 지키는 것은 인위적인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성(天性)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지적하며 상낭의 절의(節意)를 칭송하였다.

[의의와 평가]

「열부상낭전」은 평민 여성의 순박한 성정을 배워도 지키지 못하는 세속의 여자들과 비교하여 상낭의 절개를 칭송하고 있다. 또한 길재의 지주비를 등장시켜 여성의 순박한 절개를 칭송하면서 동시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의 유풍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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