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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열부향랑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914
한자 林烈婦薌娘傳
영어의미역 Biography of Virtuous Woman Hyangna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傳)|전기|인물전|열녀전
작가 이광정(李光庭, 1552~1627)
창작연도/발표연도 조선 후기

[정의]

조선 후기 이광정이 구미 지역 출신의 열녀 향랑(薌娘)에 대해 쓴 전기.

[개설]

이광정(李光庭, 1552~162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덕휘(德輝), 호는 해고(海皐)이다. 정언을 지낸 이주(李澍)의 아들이다. 1597년 명나라 사신 심유경(沈惟敬, ?~1597)의 접반사가 되어 일본과의 회담에 참여하였다. 호조판서·공조판서·한성부윤을 지냈고, 1601년 지중추부사로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임열부향랑전」이광정의 문집인 『눌은집(訥隱集)』에 수록된 열녀전이다.

[내용]

향랑은 경상북도 일선군 형곡리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깔끔했으며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고 들어온 계모가 향랑을 미워하여 회초리를 드는 등 학대하였지만 향랑은 더욱 공손하였다.

향랑은 열일곱 살에 열네 살의 임칠봉에게 시집갔는데 거친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온갖 구박을 받다 시부모에 의해 친정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나 계모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향랑은 돌아간 어머니 친정의 외숙부에게 의탁하였다. 외숙부가 재가를 강요하자 향랑은 다시 시댁으로 돌아갔지만 남편인 칠봉이 성내며 향랑을 박대하였다. 시아버지도 향랑을 거부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향랑이 자결하여 집안을 더럽히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갈 곳이 없어진 향랑은 오태강(吳泰江, 낙동강의 지류) 가에 이르러 나무하는 어린 계집아이에게 자신의 성씨와 고향을 알려 주며 말을 전해 주길 부탁하였다. 향랑은 아이와 함께 길재의 사당 아래에 있는 지주비(砥柱碑)에 이르러 머리를 풀고 옷을 벗어 아이에게 주며 “하늘 높고 땅이 머니/ 나 어디로 가리/ 강물에 몸 맡기고/ 물고기 배에 실리리라(天高地遠 我何適兮 投體江流 載魚腹兮).”라는 「산유화」 한 곡조를 읊은 뒤 옷소매로 얼굴을 감싸고 강물에 투신하였다.

향랑의 일이 알려지자 군수인 조구상(趙龜祥, 1645~1712)이 글을 지어 제를 올리고 조정에 알려 정려가 서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임열부향랑전」은 18세기 조선 한문학에 흥미로운 소재의 하나로 등장한 향랑을 전기문으로 재구성하여 도덕적 교훈과 함께 향랑의 죽음을 모태로 하는 국문 시가 「산유화」의 유래와 내용 등을 밝혀 한문학뿐 아니라 국문학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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