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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A020305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재호

2007년 7월 9일 성주배씨 집안의 최씨 할머니 장례식을 참여관찰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망자는 경주최씨 최일순 할머니(88세)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로 계셨고, 맏아들 역시 당신보다 일찍 세상을 버림으로써 상주는 맏손주인 배동렬(성주배씨, 45세)씨이다. 둘째 상주는 둘째아들 그리고 다음으로는 사위 순이다. 할머니는 생전에 역시 홀로 살던 며느리의 지극한 정성을 받았는데, 세상과 이별하기 전 50여 일 동안 요플레(판매식품의 하나인 유제품)로 연명하셨다고 한다.

오늘날 대개의 경우, 집안에서 돌아가시더라도 망인을 병원이나 장례예식장의 영안실에 모시고, 역시 그 곳에 빈소를 마련하여 손님을 맞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니 배씨 집안에서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상례를 집에서 치르고 꽃상여를 이용해 출상을 하게 되었다. 3일장을 치르는 것이었으며, 장지는 오상리(五相里) 다시말 공동묘지이다.

[출상과정에 대한 설명]

2007년 7월 9일 최일순 할머니의 장례 발인(發靷) 시각은 오전 7시 30분 이었고, 하관(下官) 시각은 오전 9시 30분으로 잡혔다. 마당에서부터 운구차량이 준비되어 있는 동네 삽짝까지 상여꾼들이 꽃상여를 운반하였으며, 다시 장지 아래의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서부터 장지까지 운구를 하였다. 상여는 마을의 청년봉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매기도 하였지만 오늘날 청년봉사회 회원들은 사실상 연령이 60세 이상으로 높고, 대신 외지에 나가 사는 망인의 자식들이 별도로 가입하고 있던 상여계들이 있어 그 상여계원들 중심으로 상여꾼이 편성되었다.

상여틀은 12명이 매는 소(小)틀이었으며, 상여소리는 동장님을 비롯한 몇 분이 할 수 있으나 김동만(67세) 씨가 하였다. 그리고 지관(地官)은 동네일을 많이 보아 온 최종욱(75세) 씨였다. 상여소리의 후렴구는 ‘어어화 어어화 어어화 너넘자 너어화’로 반복되며, 이 뒷소리에 맞게 선소리꾼이 소리를 매겨나가나 소리의 문서가 다채롭지는 않은 편이다. 출상의 순서는 운삽(雲翣), 명정(銘旌), 영정(影幀), 영여(靈與), 상여(喪輿), 상주(喪主) 순이다.

[장례과정에 대한 설명]

매장방식은 상여와 관을 해체하고 대렴 때 넣은 보공품(補空品) 역시 매장에서는 제외한다. 관의 재질이 좋은 것이라면 관을 해체하지 않고 통째로 하관하기도 하나 그렇지 못한 상태라 해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전에 못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삭자리(삿갓으로 사용하는 비교적 거친 대나무로 짠 자리)에 시신을 눕혀서 매장하였으며, 조금 형편이 나은 집에서는 왕골로 짠 초석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관을 해체하고 보공품을 제거했기 때문에 결국 염을 한 상태의 시신만 맨 땅에 매장을 하는 것이며, 시신을 방향에 맞추어 눕힌 다음 시신 주위로 미리 흙을 채운 다음에 명정(銘旌)을 덮고, 운삽을 명정 아래와 위로 하나 씩 넣고 리본처럼 만든 청홍예단(靑紅禮緞, 실질적으로 청색은 검은 색에 가까움)을 명정 아래 상하로 하나씩 부장하였다. 청홍예단은 시집올 때 예단을 해오듯이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데 필요한 일종의 예물에 해당한다. 그리고 망자가 평소에 신던 신발과 틀니도 함께 봉안하여 부장하였는데, 저승에서도 좋은 것을 많이 먹고, 좋은 곳을 많이 구경하시라는 의미라도 한다. 신발은 영여에 함께 넣어서 운반하였으며, 틀니는 망인과 친하였던 동장님의 모친이 먼 곳에서 일부러 전화하셔서 대렴 때 넣어 드리는 것이 좋은데, 만일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하관 때 꼭 넣어드리는 말씀이 있어서 그렇게 챙긴 것이라고 하였다. 이후 상주가 상복의 앞섶에 흙을 담아 세 번 나누어 “치토합니다!”를 외치면서 뿌림으로써 매장이 시작되었다.

흙을 덮는 방식은 일차로 석회를 섞은 흙으로 먼저 다진 후에 포크레인을 이용해 본격적인 매장을 하였다. 석회를 섞어서 넣는 이유는 주변의 나무뿌리가 시신 주위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회다지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봉본을 만들 때의 ‘달개질(혹은 달기) 소리’(덜구찧는 소리, 덜구 소리) 역시 상여소리의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매겼다. 달개질은 통상 3번 하게 되는데, 그것은 3층으로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북부 지역의 경우 역시 3번 덜구를 찧되, 매번 잔디를 입혀 봉분 속으로 잔디의 일부가 묻히도록 하면서 봉분을 켜켜이 쌓아가지만 이곳은 봉분 전체를 완성하고 맨 위에 잔디를 입히는 방식으로 하며 덜구질 역시 양파껍질 모양처럼 다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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