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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A020306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재호

[곡(哭)제사의 제례]

제례의 방식은 집안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전주최씨 가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전주최씨 집안에서 행하는 기제사는 조율이시(棗栗梨柿)의 원칙에 의해 상차림을 하지만 조율(棗栗) 다음에 시과(時果)와 조과(造菓)를 놓고 이시(梨柿)를 진설한다.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제물은 본편인 시루떡이며, 시루떡은 예전에는 집에서 쪘으나 요즘은 방앗간에 부탁하는데, 떡쌀은 집에서 갖고 가며, 그 위에 놓는 ‘우끼’는 예로부터 집에서 반드시 만들었다.

전주최씨가의 기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곡(哭)제사’를 지내는 집안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 기제사에 곡을 하는 것은 아니며, 생전에 뵙던 조상들에게만 곡을 한다. 곡을 하는 방식은 독축 후에 주로 곡을 하지만 특별한 사정에 의해 제사를 지내는 내내 곡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조부제사의 경우인데, 조부께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기제사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조모를 비롯하여 모든 제사 참여자들이 눈물바다를 이룬다. 고조부는 뵙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하 증조부까지 곡제사를 지내며, 제사에 참여한 모든 제관들이 모두 곡을 한다.

[전주최씨 집안의 곡제사(哭祭祀)]

2007년 6월 16일(음력 5월 2일) 최열 씨의 증조부 기제사의 현지참여관찰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일(忌日)]

전통적인 방식에 따르면 6월 15일 저녁이 제사가 드는 입제일(入祭日)이 된다. 그러나 최열 씨 집안에서는 제사를 하루 미루어 지낸다. 조상님이 살아계셨던 마지막 날 첫 시 즉, 자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날 저녁에 지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산날’ 자시가 아니라 저녁으로 미루어 지내게 된 것은 제관들인 동생들이 멀리서 오고 또 제사를 마치고 그날 돌아가야 뒷날 정상적인 직장 출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사정을 배려한 것이다. 이렇듯 기제사를 미루어 지내기 시작한 것은 최열 씨가 제사를 상속받은 후부터이다. 바로 부친이 세상을 떠난 이후가 되는데, 정확한 시기는 1996년 부친이 돌아가시고 1998년 대상까지 마친 다음 해인 1999년부터이다.

[곡제사의 방식]

초헌관인 최열 씨의 증조부는 최열 씨가 첫돌을 지냈을 때 돌아가셨다. 그렇기 때문에 증조부에 대한 기억은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 하지만 첫돌을 지내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생전에 뵌 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 곡제사를 지낸다. 곡을 하는 방식은 초헌관만이 곡을 하는 것은 아니며 전 제관들이 모두 독축 후에 곡을 한다. 여성들도 제청에서 제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종부의 경우 아헌관이 되며, 잔을 드리지 않을 때는 멀찍이 물러나서 제사 과정을 지켜본다. 곡을 할 때는 다른 며느리들 즉 손아래 동서들과 함께 안방에서 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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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1 내용 변경 [곡(哭)제사의 제례] 전주최씨가의 기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곡(哭)제사’를 한다는 점이다. → 전주최씨가의 기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곡(哭)제사’를 지내는 집안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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