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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임씨 마을에 정착한 선산김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B020101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대권

고려말기에 광주목사를 지낸 화의군(和議君) 김기(金起)의 5대손인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광좌(金匡佐)공이 1509년(중종 4년)에 지금의 선산읍 독동리인 옛 독동방 고남동리에서 5남을 거느리고 선산임씨 처가인 원호리로 이거하였다.

부인 선산임씨의 부친은 통정대부상호군(通政大夫上護軍) 무(珷)이다. 김광좌가 이거할 당시만 해도 원호리선산임씨 집성촌이었다. 『일선지(一善志)』에 보이는 원호리 출신의 인물들을 보면 16세기 중반까지 보이다가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임진왜란을 전후한 성씨집단의 이동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산임씨들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한 시기에 원호리에 들어온 선산김씨들은 입향조 김광좌의 아들인 진락당 김취성, 별제공 취기, 교위공 취연, 찰방공 취련, 문간공 취문, 참봉공 취빈의 여섯 형제의 자손이 원호리를 중심으로 하여 선산일대에 자리잡게 된다.

현재 원호리에서 가장 큰 파인 판서공파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선산김씨 판서공파 세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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