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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바꾸어 놓은 이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D020103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신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진

대부분의 이주자들이 이주전략으로 선택한 집단이주는 고향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끼리 이주하여 모듬살이를 하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생계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상금의 많은 부분을 주택건설에 투입하였고 나머지 보상금으로 자녀들과 형제들의 학자금, 생활비에 사용하였다. 모든 물건의 보상을 현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쓰임새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게다가 이주단지 주변의 땅값이 폭등한 탓에 보상금을 많이 받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주자들도 예전만큼 농토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은 토지이지만 지주로서 농사를 짓는 이주민은 많지 않았다. 대신 인근 토지를 소작하는 이주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다가 소작인들은 당시 구미공단 공사판의 일용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지주들도 농한기에는 공단건설 현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주민들의 안정된 생계전략의 하나는 공단근로자들에게 셋방을 임대해 전세금을 받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당시의 주택이 농촌 주택과는 달리 콘크리트 블록집이지만 이색적인 주택이었기 때문에 주거환경은 비교적 좋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래서 공단근로자들의 셋방으로는 인기가 좋았다. 특히 1980년대에 금오공대가 완공되면서 셋방을 구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 이주단지의 셋방은 수요가 더욱 늘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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