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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385
한자 星水里
영어음역 Seongs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귀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총인구(남,여) 419명[남 206명, 여 213명]
가구수 157가구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자연마을인 용수(龍水)와 수성(水星)에서 한 음절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용수는 1566년경 황보신(黃保身)이 개척한 마을로 마을 서남쪽에 용샘[龍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마을 뒷산의 형상이 자라목과 같아서, 또는 멀리서 보면 마을이 산에 가리어 보이지 않고 개울을 따라 마을 앞에 이르러야만 보이는 형상이 마치 자라가 고개를 웅크린 모습과 같아 자라고개라고도 한다. 지금은 주로 자라곡이라 부른다.

수성은 마을의 불빛이 마을 앞 늪 가운데를 비추는 모습이 물에 뜬 별과 같아 붙여진 이름으로 수별창·수부창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을 용수 근처라고 불렀으므로 별 ‘성’자와 물 ‘수’자를 따서 수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선산군 몽대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수동·수성동, 해평면 금곡동(金谷洞), 인동군 북면 중동 일부를 병합하여 수성과 용수의 이름을 따서 성수동이라 하고 선산군 산동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동이 리(里)로 바뀜에 따라 산동면 성수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남서쪽 용수봉(龍水峰) 줄기가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에 고아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쪽에 해평평야, 마을 뒤로는 구미시계가 되는 봉화봉(烽火峰)이 있다. 삼면이 면계(面界)와 군계(郡界)를 이루는 지역이다.

[현황]

2007년 8월 1일 현재 총 157가구에 419명[남 206명, 여 21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성수1리와 성수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들이 넓어 예부터 벼농사를 많이 짓고 있으며, 평해황씨·선산김씨·경주이씨·여양진씨 등 다양한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마을 시설로 마을 회관, 공동 창고, 20개소의 관정, 그리고 2011년에 준공된 산동하수종말처리장이 있다.

국도 25호선과 국도 67호선이 지나지만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 교통이 대체로 불편하고, 고아면과 구미시를 드나드는 용수진(龍水津)이라는 큰 나루터가 있었는데 구미대교가 개설된 후 폐쇄되었다. 1950년까지 마을 앞 느티나무에서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폐지하였고, 1980년에 부활하였으나 다시 폐지하였다. 매년 삼월 삼짇날 용샘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용정제(龍井祭)를 지내고 있다.

유적으로 황보신과 황린의 추모소인 영모재(永慕齋)가 있고, 용암(龍巖) 박운(朴雲)이 암자를 짓고 학문을 탐구하던 용수암(龍水庵)이 시루봉 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용소(龍沼)만 남아 있다.

마을에 전해 오는 전설에 따르면, 봉화산 중턱에 있는 용샘의 물이 낙동강의 물과 같아서 샘물이 흐릴 때에는 낙동강 물도 흐리고 맑을 때에는 강물도 맑아진다고 한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용샘에서 나온 천마를 타고 명나라 천자가 주는 홍의를 입고 왜적을 토벌했다는 전설도 전해 온다.

주요 지명으로 마을에 홍수가 나면 마을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출향(出鄕)하였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회향(回鄕)고개가 있다. 그 후에 마을의 들을 정리하여 수리 안전답으로 만들어 세류(細柳)들이라 하였다. 세류들에 보(洑)를 설치한 유공자의 송덕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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