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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240
한자 尹致羲
영어음역 Yun Chihui
이칭/별칭 윤치수(尹致秀),성여(成汝),금범(錦帆),문헌(文獻)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797년연표보기
몰년 1866년연표보기
본관 해평
대표관직 공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초명은 윤치수(尹致秀), 자는 성여(成汝), 호는 금범(錦帆). 윤득녕(尹得寧)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백동(尹百東), 아버지는 참판 윤명열(尹命烈), 어머니는 정태화(鄭泰華)의 딸이다. 후에 윤경열(尹敬烈)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윤치희는 1827년(순조 27) 문과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뽑혔다. 1842년(헌종 8) 대사성에 오르고 1846년(헌종 12) 의주부윤을 거쳐 이조참의, 부제학, 승지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에 승진하였다. 1853년(철종 4) 예조판서를 거쳐 한성판윤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63년(철종 14) 지중추부사로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서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저서로 『난초(爛抄)』, 『박종지(博綜誌)』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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