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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81
한자 宋世浩
영어음역 Song Se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성별
생년 1893년연표보기
본관 여산(礪山)
대표경력 임시정부의정원 강원도대표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송세호는 여산송씨(礪山宋氏)로서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태어났다. 출가하여 강원도 오대산(五台山)의 월정사(月精寺)에 머물렀다. 일찍이 상해로 망명하여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4월 13일 임시정부의정원 강원도대표위원에 선출되어 의정 활동을 하는 한편 재무부 재무위원에 임명되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승려 복장으로 검색을 피해 자주 국내를 내왕하였다.

같은 해 5월 조용주(趙鏞周), 연승호(延乘昊) 등과 대한민국외교청년단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 자금 확보, 임시정부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상해지부장에 선출되었다. 또한 대동단(大同團)의 전협(全協)과 연락하고 서울에 와서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剛)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에 참여시킬 계획을 세우고 같은 해 11월 선발대로 정남용(鄭南用)과 같이 평양으로 출발하였는데 의친왕의 행방불명을 보고 받은 일본 경찰의 수색망에 걸려 안동에서 체포되었다가 1920년 12월에 병보석으로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도 한용운(韓龍雲)을 쫓아 불교를 통한 자주 독립 정신의 고취에 전념하다가 1926년 6월에 서울시 낙원동에서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방면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1931년 6월 다시 상해로 건너가 연초공장을 경영, 크게 성공하여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한다.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하고 상해에 잔류하다가 중국에서 타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아*** 송세호씨는 친일파라던데.. 제대로 조사하고 적어요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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