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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973
한자 義天
영어음역 Uicheon
이칭/별칭 왕후(王煦),석후(釋煦),우세(祐世),대각국사(大覺國師)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한기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출신지 경기도 개성시
성별
생년 1055년연표보기
몰년 1101년연표보기
대표관직 승통

[정의]

고려 전기의 승려.

[가계]

본관은 개성. 본명은 왕후(王煦), 호는 우세(祐世). 별명은 석구(釋煦, 석은 출가 승려의 일반적 성)이다.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 문종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이다.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형이 고려 숙종이다.

[활동사항]

의천은 11세에 문종이 왕자들을 불러 “누가 출가하여 복전(福田)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출가를 자원하였다. 1065년(문종 19) 경덕국사(景德國師)를 은사로 삼아 출가하여, 영통사(靈通寺)에서 공부하다가 그 해 10월 불일사(佛日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067년(문종 21) 왕으로부터 우세라는 호와 함께 승통(僧統)의 직책을 수여받았다.

19세에 교장(敎藏)을 수집할 것을 발원하여 1085년(선종 2) 송(宋)에 몰래 들어가 당대 석덕(碩德) 53인을 참방하여 법을 전수받았으며 삼천여 장소(章疏)를 수집하여 1086년 6월 귀국하였다. 귀국 후 개경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고 敎藏[불교 연구서] 간행을 주도하였다. 또 1097년(숙종 2) 완성된 국청사(國淸寺)에 주지로 나아갔다.

[학문과 사상]

의천원효(元曉)를 해동보살(海東菩薩)로 추존하고 그의 화쟁(和諍)과 회통(會通)을 숭모하고 공감하여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제창하고 또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천태교관(天台敎觀)에 근거하여 교종과 선종의 융합을 시도하고 교종 제파 간의 융합도 도모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 속장경 간행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 방대한 화엄종 연구서를 발췌 편찬한 『원종문류(圓宗文類)』 22권, 우리나라와 중국 고승 또는 명사들의 불교 관련 문헌을 수록한 일종의 불교문학전집인 『석원사림(釋苑辭林)』 250권, 유식(唯識)의 요점과 그 연구 방법을 안내한 『성유식론단과(成唯識論單科)』 3권 등의 저술이 있다. 문집으로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이다. 묘소는 경기도 개성시 흥왕사에 있었으며, 비문으로는 김부식의 「영통사대각국사비(靈通寺大覺國師碑)」, 임존(林存)의 「선봉사대각국사비(僊鳳寺大覺國師碑)」, 박호의 「흥왕사대각화상묘지명(興王寺大覺和尙墓誌銘)」 등이 전하며 윤관(尹瓘)의 비문도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숭도리에 있었던 선봉사는 당시 인동부(仁同府) 관할 하에 있던 금오산(당시 이름은 남숭산) 아래의 절로, 1101년 의천이 죽은 후 문도들의 이합집산이 있었지만 1137년(인종 15) 순선(順善), 교웅(敎雄), 유청(流淸) 등이 의천의 비를 세우면서 다시 산문을 결집하였으며 천태 5문(門)과 더불어 남숭산문을 합쳐 천태6법권(天台六法眷)을 형성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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