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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의 예술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812
한자 李瑀-藝術
영어의미역 Art of Yi U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석배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으로 이주한 옥산 이우의 예술 세계.

[개설]

이우(李瑀, 1542-1609)는 조선시대의 서화가로,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寄窩)이다.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율곡 이이의 동생인 이우는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 지역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이로 인해 선산의 명현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지역민의 자랑이 되고 있다. 이우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천부적인 예술의 기질을 물려받아 거문고·시(詩)·서(書)·화(畫)에 능하여 사절(四絶)이라 불렸으며, 강원도 강릉시에 소재한 오죽헌에 옥산 이우의 작품 중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이우의 아들 이경절도 가법을 이어 서·화·금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는 평을 들었다.

[옥산 이우의 시]

송시열옥산 이우의 시를 평하여 “부스러기 금이요, 조각조각 보옥이라 적을수록 기이하다.”고 말하며 감탄하였다. 형인 율곡 이이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형제간의 이별의 아픔을 표현한 시가 많고, 매학정에 은거하며 회포를 읊은 시도 많다.

[옥산 이우의 글씨]

옥산 이우의 초기 글씨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둥글게 꺾이면서도 획이 통하고 생동감이 있으며, 부드럽고 고상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한 자도 법도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훗날에는 장인인 고산 황기로의 영향을 받아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서법을 보였는데 역시 흐트러지지 않고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옥산 이우는 깨알에다 ‘구(龜)’ 자를 능히 쓰고, 콩을 쪼개 그 면에 오언 절구를 쓰되 획이 하나도 잘못됨이 없었다고 한다. 후대의 학자 우암 송시열은 “옥산의 서법은 정묘하고 때로는 웅건하여 용과 뱀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이 글씨를 얻은 자는 값진 보석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옥산 이우의 그림]

옥산 이우는 초충(草蟲)·사군자·포도 등을 주로 그렸는데, 어머니의 화풍에 따라 중국 회화 기법인 몰골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특히 풀벌레를 그려 밖에 던지면 닭이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화훼초충(花卉草蟲)을 잘 그렸다고 한다.

농담의 변화를 능숙한 필치로 유려하게 그려 낸 난초는 이파리가 방향을 바꿔 꺾이지 않고 길게 뻗어 나갔다. 이러한 난법은 중국 원·명대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조선 중기의 「묵란도」는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옥산 이우의 「묵란도」는 유례가 적은 조선 중기의 그림으로서 회화사적 의의가 크다. 옥산 이우의 「묵매화」는 주로 횡관식구도(橫貫式構圖)로 힘차게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 옥산 이우가 남긴 작품으로 「설중매죽도(雪中梅竹圖)」·「노매도(老梅圖)」·「수과초충도(水瓜草蟲圖)」·「포도도(葡萄圖)」 등이 전한다.

[옥산 이우의 음악]

옥산 이우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거문고 타는 솜씨가 뛰어났다. 옥산 이우의 거문고 타는 소리는 음이 맑고 웅장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화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학자 조성은 “깊기는 가히 현천(玄天)에 떠 있는 듯 깊숙하고 으슥하여 마치 귀신이 옆방에서 거문고를 뜯는 듯 소리가 하늘에 있는 것 같고, 또 가만히 눈 감고 듣자니 긴 봄날 공중에 뭉게뭉게 떠서 노는 것 같아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적막하고 조용해지니 그 미묘함이 무궁하다.”고 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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