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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972
한자 康復誠
영어음역 Gang Bokseong
이칭/별칭 명지,죽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성별
생년 1550년(명종 5)연표보기
몰년 1634년(인조 12)연표보기
본관 신천
대표관직 지중추부사

[정의]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신천.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 증조할아버지는 강중진(康仲珍)이고,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활동사항]

강복성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참봉·직장·찰방 등을 지냈다. 1595년(선조 28)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수현감이 되었다가 김제군수로 옮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남원에 주둔한 왜적을 쳐서 전공을 세웠으며, 경기도 고양과 충청남도 천안의 군수를 지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잠저(潛邸) 때에 시강한 인연이 있다 하여 가자(加資)되었다.

다시 동부승지·우부승지를 거쳐 평산부사·전주부윤·청송부사 등의 외직에 보임된 뒤 도총부부총관이 되었는데, 광해군의 난정(亂政)이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다시 관로에 나가 부평군수·성주목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병사를 모아 인조를 호위한 공으로 자헌대부로 승진하였다. 곧이어 정헌대부로 승진하여 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으나, 향리인 선산으로 귀향하여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일찍이 재행을 겸비하고 학술이 정심(精深)한 것으로 천거되었으며,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학문과 사상]

강복성김굉필(金宏弼)·이연경(李延慶)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문인으로는 성이성, 노사신 등이 있다. 상주목사로 부임하였을 때, 임진왜란 이후 지방 통치 질서 재편의 자료로 편찬된 읍지인 『상산지(商山誌)』 제작을 후원하였다. 문집으로 『죽간집(竹磵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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